풍차, 튤립, 치즈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비교적 소박하면서도 실용적인 식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특히 가정식은 ‘실용’과 ‘전통’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지역 특산물과 계절성, 절제된 재료 사용이 특징입니다.
네덜란드는 오랜 시간 농업과 목축업을 기반으로 한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가정식은 대부분 농촌에서 자급자족하던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감자, 채소, 고기, 콩, 치즈 등이 중심이 됩니다.
화려하거나 섬세한 프랑스 요리와는 다르게, 네덜란드의 요리는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특히 한 그릇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식단 구성이 많습니다.
또한, 네덜란드는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만드는 문화도 일상에 녹아 있어,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감자를 으깨거나 팬케이크를 굽는 모습이 흔합니다. 이는 단순히 식사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가족 간의 유대감을 나누는 전통으로 여겨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네덜란드 가정식의 대표 요리 세 가지를 통해,
- 그 요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
- 가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는지
- 집에서도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
를 자세히 소개하며, 그 안에 담긴 네덜란드의 삶과 가치관까지 함께 조명하겠습니다.
1. 스탐폿 Stamppot – 으깬 감자에 담긴 겨울의 정취
❖ 이야기: 네덜란드식 ‘비빔밥’?
스탐폿은 네덜란드 가정식 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요리 중 하나입니다. 이름은 ‘섞고 으깬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말 그대로 감자를 삶아 으깬 후 다양한 채소와 함께 섞은 요리입니다. 마치 한국의 비빔밥처럼, 각 집안마다 ‘비율’과 ‘재료’가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추운 겨울,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네덜란드 주방에서는 감자를 삶는 냄비 소리가 들립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자에 고기나 소시지를 곁들이는 이 요리는, 입안 가득 포근함을 전하는 겨울철 대표 음식입니다.
❖ 기본 재료 (4인분 기준)
- 감자 6개
- 당근 2개
- 양배추 또는 케일 한 줌
- 버터 2큰술
- 우유 1/2컵
- 소금, 후추
- 네덜란드식 훈제 소시지 (Rookworst) 또는 베이컨
❖ 조리법
- 감자와 채소(당근, 케일)를 깍둑 썰어 냄비에 넣고 소금을 살짝 넣어 삶습니다.
- 감자가 푹 익으면 물을 버리고, 버터와 우유를 넣어 고루 으깹니다.
- 여기에 삶은 케일(또는 양배추)을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춥니다.
- Rookworst(훈제 소시지)를 따로 데우거나 굽고, 함께 곁들여 냅니다.
❖ 특징 및 팁
- 감자와 채소 비율은 가족마다 다릅니다. 케일 대신 양배추나 시금치를 넣어도 됩니다.
- 아이들과 함께 으깨는 과정을 즐기면 가족 요리 시간이 됩니다.
- 버터 대신 크림치즈를 넣으면 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스탐폿은 한 그릇에 영양과 따뜻함, 그리고 가족의 정겨움이 담긴 음식입니다.
오늘 저녁, 한국식 밥 대신 네덜란드식 으깬 감자 요리로 색다른 경험을 해보세요.
2. 에르텐소프 Erwtensoep – 완두콩 수프, 겨울을 견디는 법
❖ 이야기: 얼음 위 스케이트 후 먹는 국물 요리
에르텐소프는 ‘스플릿 피 수프’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의 겨울철 대표 음식입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다가 집에 돌아와, 뜨거운 완두콩 수프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이는 장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요리는 겨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영양이 풍부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합니다.
❖ 기본 재료 (4인분 기준)
- 마른 녹색 완두콩 250g
- 감자 2개
- 당근 1개
- 셀러리 2줄기
- 대파 1대
- 훈제 돼지고기 또는 베이컨 150g
- 월계수잎 1장
- 물 1.5L
- 소금, 후추
❖ 조리법
- 마른 완두콩은 물에 불려놓거나, 끓는 물에 30분간 데쳐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 큰 냄비에 물과 완두콩, 고기, 월계수잎을 넣고 끓입니다.
- 감자, 당근, 셀러리, 대파를 썰어 넣고 중불에서 1시간 이상 푹 끓입니다.
- 고기는 건져내 잘게 썰고, 수프에 다시 넣습니다.
- 수프가 걸쭉해지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춥니다.
❖ 특징 및 팁
- 전날 끓여 다음 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입니다.
- 완두콩 대신 렌틸콩이나 병아리콩으로 변형 가능
- 훈제 고기가 없다면 일반 햄이나 베이컨도 OK
이 수프는 한 숟갈 뜨는 순간,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모두 녹여줍니다.
그 자체로 네덜란드 겨울의 맛이자, 온 가족의 휴식입니다.
3. 펜네쿠켄 Pannenkoeken – 네덜란드식 팬케이크, 가족의 일요일
❖ 이야기: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브런치
판니쿠켄은 네덜란드식 팬케이크로, 일요일 아침마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드는 대표 브런치입니다.
얇고 넓은 형태로 구워, 치즈, 사과, 베이컨, 시럽 등 원하는 어떤 재료도 올려 즐길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크레페보다 조금 더 두껍고, 미국 팬케이크보다는 얇아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습니다.
판니쿠켄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아이에게는 특별한 날의 상징, 부모에게는 추억을 만드는 도구로 여겨집니다.
❖ 기본 재료 (4장 기준)
- 밀가루 1컵
- 달걀 2개
- 우유 1컵
- 소금 약간
- 버터 1큰술
- 선택 토핑: 사과 슬라이스, 시럽, 베이컨, 치즈, 과일잼 등
❖ 조리법
- 밀가루, 소금, 달걀을 볼에 넣고 우유를 조금씩 부어가며 잘 섞습니다.
- 반죽을 10분간 숙성시킵니다.
- 팬에 버터를 녹이고, 반죽을 국자로 떠서 얇게 부어 굽습니다.
- 버블이 생기면 뒤집고, 토핑을 올려 다시 살짝 굽습니다.
- 접시에 덜고 시럽이나 잼을 곁들여 제공합니다.
❖ 특징 및 팁
- 짭짤한 버전: 베이컨, 치즈, 버섯
- 달콤한 버전: 사과, 시나몬, 슈거파우더
- 반죽에 맥주를 소량 섞으면 풍미 증가 (전통 방식)
판니쿠켄은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요리입니다.
무엇을 올릴지, 어떻게 먹을지 함께 고민하면서, 가족 간의 유대가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요리이기도 합니다.
[결론: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네덜란드의 식탁 ]
네덜란드 가정식은 언뜻 보기엔 단조롭고 투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연과 계절에 대한 이해, 실용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가족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스탐폿은 감자를 으깨는 행위로 가족이 하나 되고,
에르텐소프는 한겨울의 고된 삶 속에서도 따뜻함을 나누는 음식이 되며,
판니쿠켄은 식사 이상의 의미, 즉 기억이 되는 요리가 됩니다.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네덜란드의 식탁은 진심과 정성, 그리고 일상의 아름다움이 담긴 공간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방에서도, 이 소박한 레시피 하나로
따뜻한 유럽의 가족 문화를 체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가장 맛있는 한 끼는, 결국 함께 만든 그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요.